마라톤 영웅 손기정

...

1936년 8월 9일 오후 6시 15분에 시작된 제11회 올림픽 마라톤 시상식 독일 베를린 올림픽 메인스타디움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고도 고개 숙인 두 선수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육상의 꽃인 마라톤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손에 쥐었습니다. 이들의 비장한 인상을 관중은 의아해 하였습니다. 시상대에서 이들은 결코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메인스타디움에는 자신들의 조국을 식민지로 만든 일본의 국가가 우승자를 위해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고개를 숙여 게양대에 솟아오르는 일본 국기를 외면하였습니다. 훗날 동메달리스트는 금메달리스트였던 동료가 부러웠다고 말하였습니다. 우승자는 기념품인 참나무 묘목을 들고 있어 가슴팍에 붙인 일본 국기마저 가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조선의 마라토너인 금메달리스트 손기정과 동메달리스트 남승룡이 그들입니다.*

* 은메달리스트는 영국의 어네스트 '어니' 하퍼(Ernest 'Ernie' Harper, 1902~1979)이다.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주의에 침탈당한 이후인 1912년 8월 29일(음력)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남

가난하여 어렵게 초등교육과정을 마치고, 달리기에 대한 열정만으로 훈련지역대표로 참가한 조선 신궁대회 5,000m에서 2위

동아일보 주최, 경영 마라톤 대회 2위; 마라톤 데뷔전 20세 나이로 뒤늦게 중등교육과정이자 육상명문인 양정고보에 입학하고, 이후 식민지 조선과 일본의 여러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냄

3월 21일 일본 도쿄 순회마라톤코스 개설기념대회 우승 (2시간 26분 14초:비공인 세계기록) 4월 27일 조선 마라톤대회 우승(2시간 25분 14초:비공인 세계기록) 11월 3일 일본 선수권대회 및 베를린올림픽대회 최종예선 마라톤 우승 (2시간 26분 42초)

제11회 베를린올림픽대회 마라톤 금메달(2시간 29분 19초:공식 세계기록)

* 1945년 8월 15일 해방까지 식민지 기간에는 마라톤을 하지 못함

1947년과 1950년 미국 보스턴마라톤대회 한국대표팀 감독

4월~1950년 8월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 취임(KOC위원 겸임)

제5회 아시아경기대회 단장

KOC(한국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1970년~2002년 대한육상연맹 고문

KOC 위원

1979년~1985년 KOC 상임위원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

마라톤강화위원장

1985년~2002년 KOC 상임고문

2001년~2002년 삼성전자 육상단 고문

11월 15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남(향년 90세)

  • Bronze Helmet of Ancient Greece

  • 그리스 투구
  •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기념품
  • 기원전 7~8세기
  • 1875년 아테네 올림피아광장 출토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보물 904호

그리스 투구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기념품

이 투구는 그리스 정부가 아테네 브라드니 신문사를 통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우승자에게 주는 기념품입 니다. 그런데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우승 기념품은 전달되지 못하고 50년간 베를린의 샤로텐부르크 박물관에 보관되어 왔습니다. 드디어 1986년 손기정에게 전달되었고, 손기정은 이를 1994년 국가에 기증하였습니다. 정부는 손기정의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서양 유물로는 처음으로 보물 904호로 지정 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코린토스양식 투구

고대 그리스 시민들은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믿었습니다. 고대 올림픽 의 정신에는 고대 그리스 시민들의 사상이 그대로 담겨 있으며, 현실적으로 시민군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시민은 자신의 재산에 맞게 스스로 무장을 하고 시민군이 되었 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갑옷은 투구와 상체를 보호하는 판갑 그리고 정강이 가래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갑옷은 건강한 육체의 골격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투구는 완전히 착용했을 때 눈과 입만 노출되도록 만들어졌는데 이런 것을 코린토스양식 투구라 일컫습니다. 여러 그림이나 조각을 통해 볼 때, 투구는 머리를 완전히 감싸도록 푹 눌러 쓰 기도 했고, 이마 위쪽에 걸치듯이 착용하기도 했습니다. 투구의 중간부분이 약간 잘록 하기에 이와 같이 두 가지 방법으로 착용할 수 있었다고 보입니다. 투구는 볼 가리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밑으로 길어지는 것으로 변화합니다.

August 13, 1936 Seoul 1936년 8월 13일 경성

기다리던 올림픽 우승 사진이 드디어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런데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실린 두 선수의 시상식 사진에는 일본 국기가 없었습니다. 흐릿한 전송 사진이었기 때문에 일본제국주의의 언론 검열관은 이를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아일보 8월 25일자 석간 제2판에는 일본 국기를 지운 너무나 선명한 사진 이 다시 실렸습니다. 일본제국주의는 이를 도전으로 받아들여 언론인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였습니다. 곧 신문은 강제 폐간되거나 스스로 휴간해야 했습니다. 이 일이 있고도 한참 뒤, 귀국길에 오른 손기정은 싱가포르에서 이 소식을 들었고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식민지시절 손기정에게 올림픽 마라톤 우승은 오히려 구속이었습니다. 그는 한민족 에게 영웅이었으나, 이를 일본제국주의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환영행사는 모두 통제되었고, 그는 식민지시절 내내 더 이상 달릴 수 없었습니다. 강제로 일본제국 주의를 찬양하는 데 동원되기도 하였으나, 그의 행적 곳곳에는 이에 대한 저항과 울분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손기정은 조국이 식민지로 바뀐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태극기를 보지 못한 채 자랐습니다

올림픽에서 우승한 직후 그는 머나먼 독일 에서 태극기를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베를린에는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사촌인 안봉근이 살고 있었습니다. 일본선수단이 손기정의 우승기념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을 때, 식민지 조선의 선수들은 파티장이 아니라 안봉근의 집에 몰래 모였습니다. 그곳에는 조국에서 볼 수 없었던 태극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고도 가슴팍에 새겨진 일본 국기를 부끄러워한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1945년 8월 15일에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한반도는 해방이 되었습니다. 아직 독립된 정부가 없었고, 한반도의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소련이 군정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1947년 4월 19일 남녘의 마라토너들이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참가하였고, 서윤복은 대회 신기록을 수립 하며 우승하였습니다. 그의 가슴팍에는 태극기와 미국 국기인 성조기가 함께 달려 있었습니다. 손기정은 감독으로 참여하였습니다.
1948년 8월 15일 한반도 남녘에 독립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습니다. 1950년 4월 19일에 대한민국의 마라토너들은 다시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섰습니다. 1등은 함기용, 2등은 송길윤, 3등 최윤칠 모두 대한 민국의 선수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처음으로 태극기만을 새긴 운동복 을 입고 달렸습니다. 이후 대한민국의 마라토너에게 태극기는 완전히 상징이 되었습니다. 감독이었던 손기정의 감동은 남달랐습니다.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에서 우승한지 56년이 지난 바로 그날, 1992년 8월 9일에 황영조는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 습니다. 그 다음 1996년에 미국 애틀랜타올림픽 마라톤에서는 이봉주 가 은메달을 땄습니다.